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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영도 역시 장비빨?!

    지난 번에 수영 강습을 하기까지의 기나 긴 여정에 대해 말씀드렸죠. 오늘은 수영 전에 필요한 준비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수영에 홀랑 빠진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

    수영 강습을 등록하고 나면, 강습은 대략 일주일 후에 시작합니다. 너무 기다려서 그런지, D-day는 어슬렁어슬렁 다가오고 있었어요. 아아, 어서 수영을 배웠으면…! 한편, 인생은 장비빨 아니겠습니까. 브라우저엔 온통 수영복의 종류, 수영 초급자 수영복 추천, 수영복 리뷰, 등등을 띄워놓았죠. 내일 배송, 당일 배송 등을 재가며 오늘 결정해야지, 아니 내일 결정해야지, 이랬다저랬다 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수영장 길 건너에 수영복 전문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바로 이거다! 결국 내일 배송과 당일 배송의 마지막 기회를 모두 놓친 저는 첫 강습 바로 전날 수영장에 사전답사(!!)라는 것을 가면서 길 건너 수영복 전문점에 가서 수영복도 사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전향했습니다.

    수영장

    제가 아홉 살이 되던 해에 수영 강습을 듣고 한 달 만에 때려친 후로, 저는 강습을 받는 수영장이라고는 가본 적이 없습니다. 로테르담에 살 때 동네 산책을 하다가 문이 열려있던 동네 수영장을 한 번 흘낏 본 게 전부 아닐까 싶어요. 검색을 해봤지만 프라이버시 등등의 문제로 수영장 내부의 사진 자료는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니 어쩌겠어요, 견학을 한 번 해 봐야지. 수능 전 날도 고사장 답사는 하지 않습니까. (응?) 시립체육센터로 들어가 수영장이 있다는 2층으로 냅다 올라가 보았습니다. 여성 탈의실이라는 표시를 따라 들어갔어요. 들어가자마자 늘어선 신발장. 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에서 신발을 신고 탈의실을 간다고는 상상할 수 없겠죠. 저는 신발을 입구에 가지런히 벗어두고 신발장을 지나 들어가 보았습니다. 아 탈의실, 아 대형 선풍기, 아 동네 목욕탕…? 아마 그 목욕탕, 아니 샤워장을 지나면 수영장이 나오는 모양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수영장 입장을 위한 시퀀스는 마스터했다는 기분에 회심의 미소를 짓고 나왔죠. 3층으로 올라가니 수영장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와 작은 카페가 있었어요. 눈 앞에 파아란 수영장 레인이 뻗어있고요. 내일이면 저도 저기서 발을 참방참방… 이렇게 신날수가.

    장비빨

    짧은 견학은 이 정도로 하고 길을 건넜습니다. 다음은 장비빨을 쎄울 차례. 왠지 찻길에서 돌아앉은 수영복 전문점에 어찌어찌 입구를 찾아 들어가니 벽에는 온통 수영복이 걸려있고, 전문점 사장님은 아주머니들 여럿을 응대하고 있었어요. 구석에서 조용히, 나름 매의 눈으로 수영복을 스캔합니다. 하지만 뭘 알아야 고르죠. 포기하고 아주머니들이 구매를 마치고 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물론 진지하게 수영복을 이모저모 따져보는 척 하면서 말이죠.

    수영복

    드디어 제 차례가 왔습니다. ‘수영복 사려고 하는데요. 초급 강습 처음 들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장님께선 초급은 이 쪽이 잘 나간다며 골라보라고 합니다. 어차피 수영장 물에 염소 농도가 높아 수영복의 주 재료인 라텍스가 삭게 마련이고, 결국 6개월 이상은 못 입는다면서요. 어깨끈은 11자 아니면 X자인데 아주머니들은 등살이 울룩불룩 나오기 때문에 보통 11자로 시작하다가도, 수영 실력이 늘 수록 고정력이 좋은 X자로 옮겨간다고 설명을 해주십니다. 저는 11자 어깨끈이 달린 수영복 원피스에 가슴패드를 추가했습니다. 수영 좀 하다보면 가슴패드 따위 다 떼어 버린다고 많이 아시는 사장님이 설명을 또… 수영 다니면서 비키니라인 따위 신경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원피스는 5부 길이로 선택했습니다. 색상은 네이비, 단색은 또 너무 심심한가 싶어 어깨 부분에 무늬가 약간 들어간 모델로 순식간에 정해버렸죠. 수영복 수명이 짧으니 앞으로도 이것 저것 입어보겠구나 하는 생각에요.

    수모

    수영장에선 수모를 꼭 써야만 합니다. 수영장에 머리카락이 해초처럼 굴러다니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겠죠. 실리콘 재질과 천 재질이 있는데, 실리콘은 보기만 해도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아서 천으로 골랐습니다. 양쪽에 크고 멋드러지게 ‘Swim is my life’라고 써있어서 초보가 떠는 허풍으로는 최고인 것 같았죠.

    수경

    수경도 필수입니다. 이게 왜 필요한지 몰랐는데 막상 물에 들어가보니 물 속에선 잠시도 눈을 못 뜨겠더라고요. 많이 아시는 사장님께서 또 지식을 전파해 주십니다. 국산과 수입이 있는데 초급은 그냥 국산 쓰면 된다, 큰 차이는 없고 수입 수경의 코팅이 조금 더 오래 간다고요. 그리고 수경을 닦겠다고 안쪽을 손으로 문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코팅이 바로 벗겨진다고 합니다. 수경에 맺힌 물방울은 탁탁 털어내기만 해야 한다고요. 손가락이 좀 닿았다고 벗겨지는 코팅이라니 믿을 수 없는 내구성이지만, 굳이 망가뜨릴 필요 있나요. 요즘도 열심히 털고 있습니다.

    TMI…

    수영복 중에 소매가 있는 모델을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아예 취급을 하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뉴스에서 래시가드 몇 번 때린 후로 반품이 줄을 서서 곤욕을 치르셨다나요. 그리고 오전 아홉시 수업이 아줌마들이 기가 세다고, 조심하라고도 알려주십니다. 글쎄 여기까지 듣고 보니 사장님께서 수영을 한 번이라도 해보진 않으셨겠다는 생각에 이렀습니다.

    정작 집에 와서 보니 엄마가 운동하면서 쓰던 수모, 이탈리아 여행 중에 야외수영장에 들어가기 위해 샀던 수모 등등 해서 수모 부자였습니다. 그 중에 하나 골라서 쓰기로 했어요. 게다가 ‘Swim is life’라고 주접을 떨던 그 수모는 집에 와서 보니 재질이 실리콘인 것이 발각되어… 첫 날 강습을 듣고 나오는 길에 반품하였습니다.

    제 인생의 첫 수영장비는 이렇게 얼레불레 마련했네요. 가끔 다음 수영복은 뭘 입어볼까 하고 수영장에서 주위를 둘러보기도 하지만 딱히 이거다 싶은 것은 없습니다. 그저 어떻게 몸을 띄우고 발차기를 더 잘 해볼 지만 궁리할 따름이지요, 핫핫핫?! 강습시간 내내 물에 들어가 있고, 부지런히 발차기를 해서 물보라를 만들다 보니 수영복 따위는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사실 숨 쉬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거든요. 혹시 다음 달, 첫 강습을 앞에 두고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저 넉넉한 사이즈의 편한 장비를 고르시길. 입고 보니 제 장비들은 모두 아주 살짝 끼더라고요. 염소 듬뿍 수영물에 어서 좀 늘어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