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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적 갈림길에서 (feat. 포용의 대잔치였던 남태령)

    역사적 갈림길에서 (feat. 포용의 대잔치였던 남태령)

    또 하루 대단한 날이었습니다. 긴 집회 끝에 피로한 몸을 이끌고 집에서 쉬고 계실까요, 아님 노트북이나 태블릿 화면 속 열기가 여운으로 남아 마음을 가라앉히는 저녁을 보내고 계실까요. 어느 쪽이든 수고 많으셨고 그 모든 연대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저는 남태령 집회가 지난 밤으로 끝나지 않고 밤새 이어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전농TV 라이브를 비롯해 여러 매체를 모니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더불어민주당의 박찬대 원내대표가 기자간담회를 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래는 모두발언 중 일부인데요.

    많은 국민께서 윤석열 탄핵 이후에도 계속되는 내란 잔당들의 준동을 지켜보시며 불안해하시고 걱정하고 계십니다. 내란 수괴 윤석열이 파면되지 않고 다시 대통령 직무에 복귀했을 경우 국가적 피해와 국민적 피해의 혼란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 자명합니다. 그렇기에 어느 때보다 비상한 각오와 책임감으로 이 사태를 수습하고 확실하게 종결짓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대목을 듣는 순간, 얼마 전 읽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한 부분이 생각났습니다. 이 책은 얼마 전 간단하게 소개한 바 있습니다.

    아래는 우리나라의 체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믿던 때의 글입니다. 남한을 치켜세워주는 이 글과는 달리, 우리는 이미 법질서가 얼마간 침해된 상태로, 경제활동에 막대한 타격을 받으며 3주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죠.

    남한에서는 국가가 경제활동을 지원하고 법질서를 유지해준다. 그 덕분에 기업가는 은행과 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릴 수 있고 외국 기업이 남한의 기업과 제휴를 맺을 수 있으며, 개인은 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살 수 있다. 남한에서는 대체로 원하면 무슨 사업이든 벌일 수 있다. 북한에서는 어림도 없는 소리지만, 실제로는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불법적으로 은밀히 이런 활동을 하는 주민이 적지 않다. 남한에서는 근로자를 고용하고, 상품과 서비스를 팔며, 어떤 식이든 원하는 대로 시장에서 돈을 쓸 수 있다. 북한에 있는 시장이라고는 암시장뿐이다. 남북한 사람들은 바로 이런 전혀 딴판인 제도하에 살고 있다.

    우리는 이를테면 ‘결정적 분기점’, 또는 역사적 갈림길에 서 있고, 책에서 이런 사건의 결과는 우발적으로 결정이 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과로 정해진 답은 없다는 겁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말하는 ‘내란 수괴 윤석열이 파면되지 않고 다시 대통령 직무에 복귀했을 경우’도 상당한 확률로 가능한 현실이고, 그 후에 이어질 피해는 복구가 불가능한, 가히 파멸에 가까울 것으로 염려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책에서는 다양한 성공과 폭망의 사례를 들어, 역사적 사건 후 각 나라들이 어떻게 발전 또는 퇴보해 왔는지 설명하고 있는데요. 그 중 아르헨티나 예를 볼까요. 1946년에 후안 도밍고 페론이 민주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를 따르던 의원들이 대법관들을 탄핵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대법관을 임명함으로써 대법원을 무너뜨립니다. 이는 그 후 군사정권과 민간정권이 번갈아 들어서도 관례로 이어지게 됩니다. 또 이를 이용해 대통령 임기 제한도 없애죠. 그 후는, 우리역사에도 있었던 장기집권이라는 익숙한 전개가 됩니다.

    이 상황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과는 다르지만, 자기 당의 안위만 챙기고 국민을 배반하는 지금 국민의 힘당 소속 의원들의 행태가 아르헨티나의 의원들과 흡사한 부분이 있어보입니다. 과연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 이를 책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독립성을 해치려는 시도를 물리칠 의지가 분명한 광범위한 사회계층이 성원을 보낸다면 대법원은 힘을 얻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그랬지만 아르헨티나의 사정은 달랐다. 자신들의 입지도 언젠가 위협받을 것을 예기치 못한 것은 아니겠지만, 의원들은 거리낌 없이 대법원의 독립성을 훼손했다. 착취적 제도하에서는 대법원을 무너뜨려 얻는 소득이 그만큼 높으므로 잠재적인 이득이 위험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반민주주의에 부역해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납치되어 인권을 유린당하고, 국민 대다수가 뜬 눈으로 몇조에 달하는 자산을 잃고 있을 때 자신의 당과 자신만은 득세하는, 이기적인 동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수 많은 의원 부적격자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비상한 각오와 책임감으로 이 사태를 수습하고 확실하게 종결짓”겠다는 더불어민주당의 의지에 공감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더딘 진척상황을 보면 답답하기만 합니다. 정치 진영의 작은 차이를 잠시 잊고 지금 한국 상황을 보면, 자기 당의 안위만 생각하는, 국민의 힘 당이라고 하는 수구세력과 그 나머지 국민이 충돌하고 있죠. 그래서 포용의 대잔치 같았던 오늘의 남태령에 많이 열광하고 조금 안도했습니다. 이 모든 것의 끝에 우리는 과연 어디에 닿게 될까요.

    결정적 분기점에서 기존 제도가 정확히 어떤 발전 경로를 따를지는 서로 충돌하는 힘 중에서 어느 쪽이 살아남느냐, 어떤 집단이 효율적인 연합세력을 구성하느냐, 어떤 지도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사건을 이끌어가느냐에 달려 있다.

    효율적인 연합세력을 구성할 때, 이 상황을 우리가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이 책이 힌트를 주는 것만 같습니다. 희망을 가져도 될까요.

  • 번영과 빈곤의 갈림길

    번영과 빈곤의 갈림길

    쏟아지는 뉴스에 생각이 잘 정리되지는 않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제도의 측면에서 한 번 보고 싶었어요. 잘 될 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해보죠.

    비상 계엄이 선포된 날, 저는 마침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을 읽고 있었어요. 이번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대런 애쓰모을루가 쓴 책이죠. 대런 애쓰모을루는 제도 경제학자로 알려져있어요. 제도 경제학은 흔히 알려진 미시 경제의 수요 공급 곡선이나 거시의 이자율 대비 산출 등과는 다르게, 역사 속에서 경제 행동을 결정짓는 제도의 역할을 연구하는 학문이예요. 저도 석사 과정 중에 접하여 매우 관심이 많은 분야입니다.

    그런 질문 하곤 하죠. 왜 어떤 나라는 잘 살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지. 대런 애쓰모을루는 포용적인 제도는 번영을 부르고 착취적인 제도는 빈곤을 부른다고 했어요. 이때 번영과 빈곤은 한 국가의 번영과 빈곤입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모두들 포용적인 제도를 도입하고자 하겠죠?

    하지만 모든 나라가 포용적인 제도를 두고도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착취적 제도 하에서 힘을 가진 소수가 이익을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많은 빵을 골고루 나눠먹으면 풍족하겠지만, 적은 빵을 소수만 나눠먹으면 그 소수도 못잖게 풍족할 거잖아요.

    포용적인 제도가 널리 그리고 깊게 뿌리내리면 빵을 독차지하는 경우도 점점 줄어들고, 남의 권력을 빼앗더라도 거기에서 추가로 얻게 되는 빵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점도 기억해 둡시다. 권력이 분산된다는 소리겠죠. 민주주의 말입니다.

    잠깐 여기서 우리나라를 바라봅니다. 민주화를 이루고 부패를 척결하며 여태껏 한반도에서 보지 못 했던 엄청난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그 길에 경제 위기도 여럿 있었지만 이제는 어지간해서는 무너지지 않을, 그런 힘을 가진 나라가 되었죠. 지난 화요일 밤, 윤석열 내란수괴가 비상 계엄을 외치기 전까지는요.

    이게 무슨 의미일까 잠시 생각해봤어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의 3권 분립제도에 아직도 보완할 부분이 있다는 점이예요. 40여년 전에나 있었던 계엄이 우리 앞에 아무렇지 않게 다시 나타났잖아요. 물론 그 과정에서 거부한 군인도 있었고 신속하게 계엄을 해제한 국회도 있었지만, 아직은 계엄이 나타날 여지가 있었다는 겁니다. 150년 전의 미국도, 200년 전의 프랑스와 영국에도 그럴 여지는 있었어요. 하지만 그 나라들은 지금은 아니예요.

    그 다음이 좀 더 흥미로운데요. 내란수괴를 비롯해 동조자들을 보면 그간 한국의 발전 성과를 조금 더 가져갔으면 가져갔지, 거기서 소외된 사람들은 아니거든요. 빵이 커지면서 점점 더 쪼개져가는 과정에서 악화일로를 느낀 것일까요? 땅 속에서 썩어 문드러진 독재의 망령을 되살려오면 다시 그 옛사람들이 거머쥐었다는 집중된 권력, 그 달달한 맛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계엄이 그들의 ‘정상화’로 가는 길이었을까요?

    앞으로 또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이쯤해서 다행입니다. 끝끝내 그들이 권력을 잡고 나머지 야당과 국민들이 권력에서 소외되는 순간, 그간 달성한 모든 번영은 쇠퇴의 길을 걸을 테니까요. 안 그래도 이미 무능한 한줌의 여당 머리에서 나오는 그 어떤 아이디어도 오천만 국민이 각자 빛날 때 나오는 것에 비할 수 없을 것이고, 심지어 그들의 아이디어는 발전이라고는 없이 이미 있는 것을 탕진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니까요. 우리의 삶도 그들의 탕진파티에 갈려나가겠죠.

    하루 빨리 윤내란을 탄핵하고, 책임자들을 처벌하길 고대합니다. 빠른 응징이 그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다음 대통령은 그 다음에 생각해도 돼요. 내각을 구성하지 못 해 벨기에는 거의 2년을 무정부 상태로 지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성숙하고, 성질마저 급하니, 농반 진반으로 벨기에 보다도 훨씬 잘 헤쳐나갈 것으로 봅니다.

    벌써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질 않네요. 각자 다른 어려움이 있겠지만 부디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