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윤내란 탄핵

  • 마지막 계엄

    다시 생각해 봐도 제가 50분 수영으로 1000미터 기록을 달성한 것은 정말 짜릿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즐거움을 느낄 새도 없이, ‘나랏일’이 엄중해 바로 준비해 나갔어야 했죠.

    그렇게 나와달라고, 국회도 탄핵안을 토요일에 표결하기로 한 것이죠. 대통령은 미쳤고, 작지 않은 여당은 이상해졌으니, 국민들이 국회 앞에 모여 압박을 해달라, 사실상 간접정치에 직접정치의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이런 일이 만약에 또 일어난다면, 지체하지 않고 달려가 집회 주최측 추산 백만명을 백만일명, 2백만명을 2백만일명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그런데요, 정말 하고 싶지 않습니다. 선거때 제 심부름꾼 하라고 지정해주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다 하다 달려나가고 싶지 않다고요. 저는 자유민주주의국가의 국민으로서 가진 권리를 누리며 살고 싶어요. 저의 일분 일초를 제 행복, 즐거움, 성취, 제 주변의 돌봄 등에 사용하고 싶어요. 시킨 일이 잘 안 되어 하나하나 직접 뒤져야 하는 상황, 밤잠 이루지 못 하고 걱정을 하고, 최악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 정말 원하지 않아요.

    여의도로 새까맣게 몰려들어 천둥같은 호령을 치면서도 질서있게 모였다 흩어지고, 시시각각 나오는 폭로와 특보를 빠짐없이 챙기며 성숙한 민주시민의 모습으로 12일을 보냈지만, 솔직히 이게 뭡니까. 뭐하는 짓입니까. 우리가 왜 이러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다고 믿는 나라에 살고 있는 거냐고요.

    내란에 가담한 이들을 엄하게 처벌하는 것 외에도, 어떻게 그 미친자가 그 자리까지 갈 수 있었는지, 왜 국정 지지도는 10%인데 자신의 안위만 챙기는 치들이 국회를 30% 이상 차지하고 있는지, 우리는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디에 허점이 있었는지, 어떻게 보완을 해야할 지 따져 보아야겠죠.

    지난 토요일에 탄핵안이 가결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그 과정에 목숨을 잃은 사람이 없어서 천만다행입니다. 여기에 다행보다 어울리는 단어는 없어 보입니다. 물론 헌재의 탄핵 인용까지는 힘을 모아야겠지만, 이번으로 끝나길 바랍니다. 제발 대한민국의 마지막 계엄과 탄핵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 번영과 빈곤의 갈림길

    번영과 빈곤의 갈림길

    쏟아지는 뉴스에 생각이 잘 정리되지는 않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제도의 측면에서 한 번 보고 싶었어요. 잘 될 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해보죠.

    비상 계엄이 선포된 날, 저는 마침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을 읽고 있었어요. 이번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대런 애쓰모을루가 쓴 책이죠. 대런 애쓰모을루는 제도 경제학자로 알려져있어요. 제도 경제학은 흔히 알려진 미시 경제의 수요 공급 곡선이나 거시의 이자율 대비 산출 등과는 다르게, 역사 속에서 경제 행동을 결정짓는 제도의 역할을 연구하는 학문이예요. 저도 석사 과정 중에 접하여 매우 관심이 많은 분야입니다.

    그런 질문 하곤 하죠. 왜 어떤 나라는 잘 살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지. 대런 애쓰모을루는 포용적인 제도는 번영을 부르고 착취적인 제도는 빈곤을 부른다고 했어요. 이때 번영과 빈곤은 한 국가의 번영과 빈곤입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모두들 포용적인 제도를 도입하고자 하겠죠?

    하지만 모든 나라가 포용적인 제도를 두고도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착취적 제도 하에서 힘을 가진 소수가 이익을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많은 빵을 골고루 나눠먹으면 풍족하겠지만, 적은 빵을 소수만 나눠먹으면 그 소수도 못잖게 풍족할 거잖아요.

    포용적인 제도가 널리 그리고 깊게 뿌리내리면 빵을 독차지하는 경우도 점점 줄어들고, 남의 권력을 빼앗더라도 거기에서 추가로 얻게 되는 빵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점도 기억해 둡시다. 권력이 분산된다는 소리겠죠. 민주주의 말입니다.

    잠깐 여기서 우리나라를 바라봅니다. 민주화를 이루고 부패를 척결하며 여태껏 한반도에서 보지 못 했던 엄청난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그 길에 경제 위기도 여럿 있었지만 이제는 어지간해서는 무너지지 않을, 그런 힘을 가진 나라가 되었죠. 지난 화요일 밤, 윤석열 내란수괴가 비상 계엄을 외치기 전까지는요.

    이게 무슨 의미일까 잠시 생각해봤어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의 3권 분립제도에 아직도 보완할 부분이 있다는 점이예요. 40여년 전에나 있었던 계엄이 우리 앞에 아무렇지 않게 다시 나타났잖아요. 물론 그 과정에서 거부한 군인도 있었고 신속하게 계엄을 해제한 국회도 있었지만, 아직은 계엄이 나타날 여지가 있었다는 겁니다. 150년 전의 미국도, 200년 전의 프랑스와 영국에도 그럴 여지는 있었어요. 하지만 그 나라들은 지금은 아니예요.

    그 다음이 좀 더 흥미로운데요. 내란수괴를 비롯해 동조자들을 보면 그간 한국의 발전 성과를 조금 더 가져갔으면 가져갔지, 거기서 소외된 사람들은 아니거든요. 빵이 커지면서 점점 더 쪼개져가는 과정에서 악화일로를 느낀 것일까요? 땅 속에서 썩어 문드러진 독재의 망령을 되살려오면 다시 그 옛사람들이 거머쥐었다는 집중된 권력, 그 달달한 맛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계엄이 그들의 ‘정상화’로 가는 길이었을까요?

    앞으로 또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이쯤해서 다행입니다. 끝끝내 그들이 권력을 잡고 나머지 야당과 국민들이 권력에서 소외되는 순간, 그간 달성한 모든 번영은 쇠퇴의 길을 걸을 테니까요. 안 그래도 이미 무능한 한줌의 여당 머리에서 나오는 그 어떤 아이디어도 오천만 국민이 각자 빛날 때 나오는 것에 비할 수 없을 것이고, 심지어 그들의 아이디어는 발전이라고는 없이 이미 있는 것을 탕진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니까요. 우리의 삶도 그들의 탕진파티에 갈려나가겠죠.

    하루 빨리 윤내란을 탄핵하고, 책임자들을 처벌하길 고대합니다. 빠른 응징이 그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다음 대통령은 그 다음에 생각해도 돼요. 내각을 구성하지 못 해 벨기에는 거의 2년을 무정부 상태로 지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성숙하고, 성질마저 급하니, 농반 진반으로 벨기에 보다도 훨씬 잘 헤쳐나갈 것으로 봅니다.

    벌써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질 않네요. 각자 다른 어려움이 있겠지만 부디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