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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은주, 나는 시간을 복원하는 사람입니다

    신은주, 나는 시간을 복원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나’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내가 가진 편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결정을 짓죠. 말로는 열린 마음을 강조해도 이내 옹골차게 ‘나’를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물론 너무 자주 주위에 흔들리면 ‘줏대없다’는 표현으로 기를 죽이겠지만, 타인의 시선과 타인의 경험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는 그 ‘항복의 순간’이 청량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이번에 읽은 책에서 그 시원한 느낌을 받았죠. 연말에 이런 저런 핑계로 친구들과 모였습니다. 그 중 출판계에 종사하는 친구가 요즘 제가 독서로 소일거리를 하는 것을 눈치채고는 책을 몇권 보내주겠노라고 했습니다. 이 책이 그 중에 한 권입니다.

    제목을 보는 순간 웃음이 났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는 것으로 모자라 복원을 하다니요. 주로 앞을 바라보며 사는 저에겐 날벼락만큼 생소한 분야입니다. 저라면 절대 고르지 않았을 책을 손에 쥐게 되다니, 신선하고 재밌었어요.

    하지만 이내, 너무 지나가버린 시간은 우리의 앞날 만큼이나 미궁이란 사실을 알게되었어요. 갑자기 나타난 유물 한 점, 또는 유물의 부분 한 점, 또는 부서진 유물 더미… 이것은 무엇이었으며 어떤 의미였을까. 저자는 현대 과학을 이용해 지난 시간을 파고드는 사람이었어요.

    보존과학자는 그 어느 것도 지레짐작 해서는 안 되더군요. 단지 앞에 놓인 유물의 쓰임새를 정의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상태도 말이죠. 겉으로 보기에 온전해 번쩍 집어든 유물이 바사삭 가루가 되어버린 에피소드를 읽을 땐 저도 등골에 땀이 맺히는 것 같았어요. 조금의 과격함도 용납하지 않는 대상과 늘 함께하는 일은 얼마나 늘 조심스러울지.

    지금의 기술과 환경으로 복원이 불가능한 유물은 아예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여 적당한 기술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대목도 인상적이었어요. 되는 대로 어떻게 해보려다 그르치는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는 것도 거대한 시간을 가르는 지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지요.

    다음은 비단 유물 복원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비롯되었지만 우리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는 지혜라 책에서 가져왔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바로잡기에는 너무 늦었거나 어렵다고 생각하는 순간들. 더러는 내 삶을 녹슬게 하는 녹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제거하려는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흔적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잘못된 것이라도 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녹이지만 이를 거울삼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나를 보호하는 방패로 삼을지, 나를 갉아먹는지 인식도 하지 못한 채 병들어 갈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결국, 시간을 거슬러 가는 것도 3차원의 세계에 사는 우리에게는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방향이 미래를 향했든, 과거를 향했든 우리는 시간과 함께 나아갈 수 밖에 없고 매번 선택을 해야하죠. 그 선택을 얼마나 의도한 대로 해내는가. 그게 각자 우리 삶의 열쇠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