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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 좋아했었네, 나…

    분주하게 움직이던 손이 서서히 느려집니다. 지금 쯤이면 샤워를 끝내고 싶었던 시간인데 괜시리 이런 저런 순서를 추가합니다. 등에 비누칠을 했던가, 발 뒷꿈치는 밀었나, 어디 아직 미끌거리는 곳은 없나,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는 시간이 하염없이 길어집니다. 짧고 굵은 샤워를 하겠어, 라고 다짐하던 순간은 멀어져만 갑니다.

    비 오는 꿉꿉한 날씨에 나가서 걷고 들어왔으니 샤워를 하는 건 현대인으로써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라고 자기합리화를 해 보지만 이내 마음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사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제 수영 강습을 가지 못 한 아쉬움을 샤워로 달래고 있음을. 이런 제 마음을 누가 들었다면 수영 이즈 마이 라이프, 마이 라이프 이즈 수영, 수영 아니면 죽고 못 사는 사람인가 하겠습니다. 실제로 터키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제 회사 동료는 기억하는 한 늘 수영을 했으며 네덜란드로 온 후 수영을 반 년이나 못 했다며 진심으로 서운함을 토로했더랬습니다. 그런데 물에 아직 잘 뜨지도 못 하는 제가 바로 그 톤으로 수영 타령을 늘어놓고 있다니. 게다가 꿩 대신 닭이라고 수영 대신 샤워물을 튀기고 있는 제가 낯설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네요.

    강습을 뭐 오래 받은 것도 아니에요. 부모님께서 이사를 하면서, 잠시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저도 ‘더불어’ 신도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하루도 기다릴 이유가 없다며 그 시에서 운영하는 수영 초급 강습을 냅다 등록했어요. 그리곤 발차기와 함께 시작한 수영 강습 겨우 3주차에, 수영 금단증을 경험하게 된 겁니다. 도대체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사실 수영을 하고 싶은 지는 1년 쯤 되었습니다. 아니, 3년 쯤 되었나요. 어느 날 부터 문득, 머릿속에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했어요. 코로나로 여행을 못 하던 어두운 시절, 저는 윤슬이 반짝거리는 지중해 해변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또는 어느 스파의 커다란 풀이랄지, 아니면, 작은 풀이라도, 그것도 아니면 욕조라도 자주 떠올려 보았네요. 역시 혼자 그 많은 물을 쓰기는 조금 부담스러워서 욕조에 물을 채운 날은 얼마 되지 않지만요. 매일 매일 수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를 심각하게 들으며, 한편 저의 머릿속은 물 이미지를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팬데믹 당시 네덜란드에서 모든 활동이 중단 되었어요. 하지만 수영과 테니스 만은 이어졌죠. 테니스는 거리두기가 가능하다, 수영은 염소에 바이러스가 다 죽는다는 외부인으로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에서요. 오호라, 이참에 나도 한 번? 하지만 전 수영장을 가지 못 했어요. 다른 활동이 제한된 상태에서 수영장으로 테니스장으로 사람들이 몰린다는 이야기가 들려왔거든요. 제가 자주 가는 숲으로 갑자기 몰리는 사람들만 봐도 수영장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죠. 게다가 저는 조금 더 복잡한 사정이 있었는데… 네덜란드의 자유 수영은 레인 안에서 한 방향과 일정한 속도의 자유만 허락될 뿐. 개헤엄을 잠깐 쳤다 말았다 하는 수준으로는 수영장을 왕복할 수 있을 리가 없거든요. 그 전에 몸을 띄운다는 감각을 잘 모르거든요. 몸을 띄운대도 제 어깨의 강인함을 신뢰하지 않거든요. 네덜란드에 자전거를 타지 않는 사람이 어물쩡 자전거 도로에 있다간 봉변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수영장의 벡터값을 맞출 수 없는 사람이 수영장 레인에 우두커니, 아니 잠깐 멈칫이라도 했다간… 그 끔찍한 상상을 거두기 위해 머리를 저어봅니다. 그리고 어쩌면 성인 수영 강습이 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그러던 가운데 자가격리 장벽은 무너졌고, 스페인의 테네리페 섬으로 드디어 휴가를 갔습니다. 어느 추운 아침 잘 보존된 원시림을 걸어 돌아나오자, 오후의 뜨거운 해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했던 숲과는 다르게 맑은 하늘과 작렬하는 태양, 그리고 손을 담그면 퍼렇게 물 들어버릴 것 같은 바다를 눈 앞에 두고, 긴 등산복을 겹겹이 입고 등산화를 신고 있는 TPO가 글러먹어도 심하게 글러먹은 저… 너무 추웠던 아침 날씨를 원망하고, 또 ‘만약’을 고려하지 않은 저를 원망했습니다. 다 벗어던지고 퐁당 빠져버리고 싶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등산화와 양말을 벗어 들고 바지를 둥둥 걷어 해변을 걸어보았어요. 지금도 생각하지만 그 때 왜 그냥 옷 입은 채로 그 얕은 물에 쓰러지지 않았던가… 그 후로 제 머릿속은 찰랑이는 물에 온전히 점령 당하고 맙니다.

    그러고도 삶은 계속 되었죠. 주 하루 출근은 이틀이 되고, 청명한 가을에 한국에 가서 로드트립을 하고, 네덜란드의 우중충한 크리스마스를 빠리에서 극복하고… 다시 봄이 왔어요. 이제는 성인 수영 강습에 관련된 브라우저를 늘 열어두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케냐에서 온 동료가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입니다. 브라우저의 강습 등록 페이지는 제 개인 컴퓨터로 모자라 회사 컴퓨터에도 열려있게 됩니다. 하지만 저의 2023년은 서로 멀리 떨어진 두 집을 매 주말마다 오가다 결국 이사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므로, 애꿎은 물만 머릿속에서 계속 출렁거렸어요.

    두 집을 오가던 중에 잠시 짬을 내어 스웨덴으로 휴가를 갔을 땐 또 어땠게요. 일찍 일어나 아직 덜 깬 눈으로 호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멀리서 들려오는 참방참방소리… 이건 새도 아니고, 뭐지? 하고 둘러보니 그 아무도 없는 고요한 새벽 호수를 누군가 잔잔히 가르는거예요. 몸에는 부이만 하나 단 채로, 멀리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손인사를 전하는 저를 빼면 아직 다들 잠들어있을 그 시간에, 거울 같은 호수를 홀로 가르는 아 저 멋진 사람. 이제 수영은 운명이 됩니다.

    그러던 차에, 휴직을 하고 한국으로 잠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이 인근 수영장이 세 곳이나 있는 동네로 이사를 하신 것이예요. ‘텍마머니’같은 사자성어는 이럴 때 쓰는 거죠. 등록할 땐 이사도 하기 전이라 ‘관외거주자’ 가산 50%를 기꺼이 감수했지요. 솔직히 소풍가는 날 보다 더 기다려지던 첫 초급 강습을 ‘치르고’ 3주가 지난 지금, 왜 아직도 화요일이 아닌거죠.

    어째서 물이 제 머릿속을 지배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나 분명한 건 이렇게 정기적으로 만나게 된 물이 더 없이 좋다는 겁니다. 그 동안 수영을 거의 안 하고 살아 온 사람치고 새삼스럽게 좋습니다. 온 몸으로 부드러운 물을 가르고 있으면 다른 그 무엇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가라앉는 것 보다는 뜨는 편이 물을 더욱 즐길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저는 열정적으로 수영 강습을 다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