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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하하지 않을 수 없다

    축하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제, 그러니까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이 취임한지 949일이 되던 날, 제가 드디어 수영 1000미터를 찍었습니다. 핫핫핫.

    거리집회에 나가기 전 아침에 수영장을 찾았죠. 자유형 20분 배영 15분 평영 15분 할 생각이었어요. 자유형을 하고 레인의 반대쪽에 도착해, 제 앞에 먼저 도착한 사람이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곧 옆 상급레인 끝에 어떤 분이 도착을 하시더라고요. 그러더니 바로 돌아 나가시는 거예요. 오호라 저거다. 필요 이상의 쉬는 시간을 줄이면 수영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고, 그럼 마의 800미터대를 넘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죠.

    제 순서가 왔고, 반대쪽 끝에 도착했고, 앞에 도착하신 분이 수경도 벗고 제대로 쉬시기에 저는 바로 돌아 나왔습니다. 이게 되네?!?! 그 때부터 저는 도착하고 바로 출발하기를 거듭했고, 그 50분의 끝에 제 애플워치에는 1000미터가 찍혀있었습니다.

    중간에 숨을 헐떡일 새가 없기 때문에 수영 자체를 살살해야 했어요. 그런데 주어진 50분의 시간 중에 물 속에 서 있는 것 보다는, 조금 살살 천천히 하더라도 물에 떠서 앞으로 나아가는 편이 낫겠더라고요. 그래서 살살 하다보니까 몸에 힘이 적게 들어가고, 오히려 수영이 더 잘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800미터대의 넢(늪;;)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1000미터 수영을 달성한 것을 셀프축하합니다. 저의 성취에 기뻐했어야 마땅한 날, 여의도를 찾느라 제때 그 기쁨을 음미할 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윤내란의 직무정지를 시킬 수 있는 탄핵안이 꼭 가결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여의도를 찾았고, 탄핵안은 가결되었고, 저는 일상으로 돌아와 했어야 할 축하를 오늘 합니다.

  • 손글씨 노트

    전에 저의 기록방식을 간단하게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거기에 더해 요즘은 ‘넘버스’도 사용 빈도가 부쩍 늘었어요. ‘넘버스’는 애플의 공식 앱입니다.

    여러 기록 툴 중에 요즘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손으로 쓰는 노트예요.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머리를 비우기 용도로 자리 잡았어요. 쓸 수록 지난 일과 앞으로 할 일도 자유롭게 정리하게 되더라고요.

    노트를 깔끔하게 또는 형식을 갖추고 쓰지는 않아요. 제 노트를 보면 월별 캘린더가 그려져 있고, 그 다음 페이지엔 갑자기 아무말이 써있다가 또 주간 계획도 나타나고요. 다꾸 좀 하시는 분들이 보면 난잡 그 자체이죠.

    하지만 모든 페이지는 그 당시 제 머리가 정리하고자 했던 것들을 쏟아 놓은 흔적일 뿐입니다. 월별 캘린더를 그린 이유는 한 달을 어떻게 보내는지 보고 싶어서 이고, 아무말이 써있던 건 그 때 생각나는 걸 적으며 의식의 흐름을 좇아본 것이예요. 월요일에는 이번 주가 어떻게 흘러갈 지 한 페이지에 담아보기도 하고요.

    이렇게 막 적다보면, 종이에는 중구난방일지는 모르지만,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특히 의식의 흐름을 좇아 서로 연결되지도 않는 문장들을 앞뒤로 쓰고, 앞에 쓴 말을 또 쓰기도 하고, 주제가 튀기도 하다보면 머릿속에서 그것들이 연결되는 기분이 들어요. 정신이 또렷해지고, 조금이라도 불편한 기분이 있었다면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생각을 비우는 노트는 그런 존재군요. 제가 쓰는 노트 Leuchtturm1917의 모토가 ‘손으로 생각하다’잖아요. 그 말의 뜻도 알 것 같고요.

    노트를 하루이틀 쓴 것이 아니고, 감탄을 어제오늘 한 것이 아니건만 이렇게 또 꺼내오는 이유가 있어요. 며칠새 노트를 꺼낼 틈이 별로 없었고, 그래서 생각은 머릿속에 헝클어진 채 저를 조금 괴롭히고 있었으며, 동시에 하려고 했던 일들을 하염없이 미루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모처럼 노트를 펴고 조용하고 차분히 저와 마주한 시간을 가졌고, 기분이 아주 조금 나아졌거든요.

    제가 이렇게 오픈된 공간에 쓰는 블로깅과는 별개로, 저를 위한 저만의 기록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진지 모릅니다. 노트를 기록하고 나면 조금 다른 사람, 또는 좀 더 나 다운 사람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오늘 밤에도 잠깐이마나 손으로 끄적이는 시간을 가져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