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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를 소통으로 살리겠다는 거짓말

    쏟아지는 뉴스 중에 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하나 있어요. 오늘 최경묵 부총리가 기자회견을 열고 “대외신인도를 확고하게 지키겠다”고 한 내용이예요. 세계 경제가 침체기에 진입하고 있고,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재임 등이 경제에 불확실성을 더해줄 거라고 예상되고 있죠. 여러 이슈에 대해 신속히 대응하겠다는 계획은 적절해 보입니다.

    다만 “해외투자자와 국제사회와 적극 소통하겠다”고 했는데, 이게 문제입니다. 해외에 우리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이 상황은 어처구니 없고 불법적인 윤내란의 비상 계엄 시도 때문이거든요. 불확실성이 커진 경제 상황은 내란의 결과이지, 대응해서 잡을 수 있는 변수가 아니란 말입니다.

    갑자기 환율이 2% 가까이 움직이고, 외국인의 매도 행렬에 코스피가 하락한 것이 국내외 경제 주체들의 단순 오해인가요? 우리 모두의 자유, 그리고 소유권을 포함한 개인의 권리를 가장 잘 담보할 수 있는 체제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지구촌의 상식이죠. 민주주의의 눈으로 본 한국은 지금 고장난 상태입니다. 어떻게 잘 설명하면 이상한 나라로부터 자산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가능하지 않습니다. 원인을 둔 채 결과만 바꾸기란 어렵습니다.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라는 결과를 바로 잡으려면, 그 원인인 내란을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빨리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이 혼란이 장기화 되면, 자산을 지키려는 외국인들이 빠져나간 한국 경제, 그 안에 속한 국민들은 홀로 정말 어려운 시기를 보내게 될 것이니까요.

    당분간 정상영업 난항

  • 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었는가?

    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었는가?

    ‘시간은 돈’이라고들 하죠. 흔하게 들은 이 말이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어원을 다룬 책인가? 아니면 트리비아의 일종 내지는 심심풀이 땅콩식 가벼운 서적인가 하는 느슨한 마음으로 책을 집었죠. 그런데 목차를 보니 정색하고 정치경제 서적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전에 인상적으로 읽은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쓴 류동민 님의 책이네요.

    저자는 경제 구조, 돈의 의미, 가치에의 탐구 등의 주제를 가지고 워밍업을 하다가 모두가 돈을 쫓고 돈을 기준으로 상품을 바라보는 물신에 대해 다룹니다. 그 물신을 기반으로 불투명한 미래를 산술 가능한 위험으로 치환한다는 것이죠. 과거도 미래도 현재의 가치로 계산이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삶은 납작한 시간의 연속 또는 임의로 앞에서 떼어 뒤에 모아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과 관계가 존재하고, 일의 순서가 있고, 우리가 그 안에서 살아가죠. 시간의 자본화는 우리의 자유로운 삶과 우리의 (자본주의가 내재되지 않은) 욕망을 괴리시킵니다.

    자본은 권력의 얼굴을 하고 인간을 기계의 보조역할로 내몰거나 우리에게 자본화된 시간의 개념을 강요하는데요. 우리는 개개인이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할 권리를 행사하고, 경험을 나누며, 자본가 또는 권력과 타협하고 살 수 있을까요? 시간의 사용 권한을 시간의 소유자 쪽으로 더 끌어올 수 있을까요?

    네덜란드에서는 업무상 이메일을 보내면 종종 이런 자동응답메일을 받습니다. “저는 월요일, 수요일 오전, 목요일 오후에만 일을 합니다. 그 외의 시간엔 답변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시간을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이죠. 다만 업무하는 시간 중에는 개개인의 컨디션이나 집중도 등은 무시한 채 높은 생산성을 요구 받는다는 점에서 시간의 자본화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한국의 경우, 워라밸이란 말은 흔한 단어가 되었지만 사실 일과 가정, 일과 양육을 양립하기 어려운 구조이죠. 노동자들이 시간을 자유롭게 쓸 권리를 충분히 가지지 못 한 셈입니다. 네덜란드처럼 일 하다가도 아이가 하교하는 시간에 데리러 간다던가, 치과 예약을 하고 자리를 비웠다 돌아올 수 있다던가 하는 일이 일상이 되면, 그 경험이 더 많이 공유된다면, 그래서 그런 자유로운 업무방식이 지금처럼 몇몇 회사의 시혜적인 사내복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퍼진다면, 네덜란드처럼 개개인이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권리 또한 커지겠죠.

    저자가 슈퍼매니저의 고임금에 대해 지적한 부분이 재밌습니다. 과연 슈퍼매니저들이 그렇게 많은 임금을 받을 만큼 성과를 내는 것인가라는 부분인데요.

    어쩌면 성과주의의 핵심은 ‘성과에 따라 보상받는다.’라는 원칙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뒤집어진 형태, 즉 ‘보상받는 것은 그만한 성과가 있기 때문임에 틀림없다.’라는 원칙에 있는지도 모른다. 인과 관계의 뒤집어짐, 그 속에서 모호해지는 인과 관계, 그것이 바로 물신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자본이 원하지 않는 능력은 아무 의미 없는 것으로 여겨지죠. 우리는 이렇듯 물신이 깊숙하게 들어온 사회에서 살아갑니다. 이렇게 보니 한동안 많이 들려오던 ‘경제적 자유’라는 말이, 사실은 빼앗긴 시간주권을 찾아오는 비장한 일이라는 점을 상기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