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서재

  • 아무튼, 스윙

    아무튼, 스윙

    스윙 댄스라는 건 스무 살 때 처음 들었습니다.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며 친구 원호가 스텝을 보여줬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니 처음 가서 한 번 배우고 보여주었던 것 같아요. 대학로 한복판에서 다짜고짜 마주친 그 스텝은 뭔가 어설펐지만 한편 제 머릿속 구석 어딘가에 각인을 남겼어요.. 그 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아… 그때 원호를 따라가서 배워야 했어…‘ 라고 얼마나 후회를 했던지. 그 후회를 떠올리며 책을 읽었네요.
    작가 김선영 님이 설명하는 스윙 지하 클럽, 인터넷 카페 활동 등등은 너무도 익숙합니다. 저도 살사 클럽에 가입한 적이 있고 운영 방식 등이 비슷했거든요. 카페를 찾아 가입하고 열심히 춤추러 다녔었지요. 전용 신발도 맞춤 제작해 신고요. 아쉽게도 그곳 사람들과의 인연은 깊고 길게 이어지지 못했어요. 가을에 석사를 하러 영국으로 떠나왔기 때문이지요. “곧 떠나버릴 것 같아.”라고 같이 춤을 배우던 사람이 토로하듯 말했었죠. 떠나와서도 춤을 계속 추고 싶은 마음도 있긴 있었어요. 그리고 몇 달 후 유럽을 여행한 사촌 동생에게 살사 슈즈를 가져와달라고 부탁했죠. 우리 애 짐도 많은데 뭘 더 얹는다는 큰엄마의 핀잔은 핀잔대로 듣고, 어설프게 끼워 넣은 신발은 오는 길에 사라져서, 다시는 그 맞춤화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공부하고 일하다 보니 춤과는 아주 멀어지고 말았네요. 당시에 몇 달 배운 실력으로 어느 정도의 리드는 따라갈 수 있습니다만, 로테르담 시청 앞에서 여름밤이면 벌어지는 살사 파티에선 늘 입만 헤 벌리고 쳐다볼 밖에요.
    작가 김선영 님은 저와는 다르게 열심히 오래 활동해 클럽의 주요 인사가 됩니다. 그러다 일을 하면서 춤이랑 멀어지고는 ‘한때 날렸다’는 과거만 읊조리다가, 어느 날 후배가 살사를 추러 가자는 말에 다시 시작하게 되는 이야기가 책에 나옵니다. 내가 좋아하던 어떤 것을 오랜만에 마주하는 그 기분, 익숙한 설렘을, 책을 따라가며 같이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버킷리스트 다 해봐야“ 하니까 이제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짝꿍이 동네에 댄스학원이 있더라고 또 굳이 찾아봐 두었네요. 스윙댄스가 진짜 곧 현실이 되려나 봅니다.

  • 신은주, 나는 시간을 복원하는 사람입니다

    신은주, 나는 시간을 복원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나’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내가 가진 편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결정을 짓죠. 말로는 열린 마음을 강조해도 이내 옹골차게 ‘나’를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물론 너무 자주 주위에 흔들리면 ‘줏대없다’는 표현으로 기를 죽이겠지만, 타인의 시선과 타인의 경험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는 그 ‘항복의 순간’이 청량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이번에 읽은 책에서 그 시원한 느낌을 받았죠. 연말에 이런 저런 핑계로 친구들과 모였습니다. 그 중 출판계에 종사하는 친구가 요즘 제가 독서로 소일거리를 하는 것을 눈치채고는 책을 몇권 보내주겠노라고 했습니다. 이 책이 그 중에 한 권입니다.

    제목을 보는 순간 웃음이 났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는 것으로 모자라 복원을 하다니요. 주로 앞을 바라보며 사는 저에겐 날벼락만큼 생소한 분야입니다. 저라면 절대 고르지 않았을 책을 손에 쥐게 되다니, 신선하고 재밌었어요.

    하지만 이내, 너무 지나가버린 시간은 우리의 앞날 만큼이나 미궁이란 사실을 알게되었어요. 갑자기 나타난 유물 한 점, 또는 유물의 부분 한 점, 또는 부서진 유물 더미… 이것은 무엇이었으며 어떤 의미였을까. 저자는 현대 과학을 이용해 지난 시간을 파고드는 사람이었어요.

    보존과학자는 그 어느 것도 지레짐작 해서는 안 되더군요. 단지 앞에 놓인 유물의 쓰임새를 정의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상태도 말이죠. 겉으로 보기에 온전해 번쩍 집어든 유물이 바사삭 가루가 되어버린 에피소드를 읽을 땐 저도 등골에 땀이 맺히는 것 같았어요. 조금의 과격함도 용납하지 않는 대상과 늘 함께하는 일은 얼마나 늘 조심스러울지.

    지금의 기술과 환경으로 복원이 불가능한 유물은 아예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여 적당한 기술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대목도 인상적이었어요. 되는 대로 어떻게 해보려다 그르치는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는 것도 거대한 시간을 가르는 지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지요.

    다음은 비단 유물 복원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비롯되었지만 우리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는 지혜라 책에서 가져왔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바로잡기에는 너무 늦었거나 어렵다고 생각하는 순간들. 더러는 내 삶을 녹슬게 하는 녹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제거하려는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흔적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잘못된 것이라도 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녹이지만 이를 거울삼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나를 보호하는 방패로 삼을지, 나를 갉아먹는지 인식도 하지 못한 채 병들어 갈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결국, 시간을 거슬러 가는 것도 3차원의 세계에 사는 우리에게는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방향이 미래를 향했든, 과거를 향했든 우리는 시간과 함께 나아갈 수 밖에 없고 매번 선택을 해야하죠. 그 선택을 얼마나 의도한 대로 해내는가. 그게 각자 우리 삶의 열쇠인 것 같아요.

  • 마르잔 사트라피, 페르세폴리스

    마르잔 사트라피, 페르세폴리스

    페르세폴리스 하면 이란의 유적을 떠올리는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오늘 이야기할 주제는 그래픽노블 <페르세폴리스> 입니다. 작가인 마르잔 사트라피는 이란 출신의 프랑스인으로, 이 책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만화는 중간톤도 없이 흑백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선지 읽는 동안 그림을 보면서도 상상의 여지가 많다고 느껴져요.

    이야기는 이란에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면서 시작합니다. 부유하고 자유롭게 살아오던 사트라피의 부모님은 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하고 크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시위에 나가고 몰래 사진을 찍어오곤 하죠. 히잡 착용 문제로 길에서 싸움이 벌어지더니 나중엔 학교에서 종교에 대한 강요도 합니다. 후에 무리한 전쟁으로 주변 사람들도 다치거나 죽기도 하죠.

    다행히 사트라피 부모님은 부유했던 덕에 가끔 몰래 파티를 열거나 터키에 다녀오면서 불법이 된 기념품을 사오기도 하는데요. 나중에 마르잔을 비엔나로 보내기로 결정하고 부부는 이란에 남습니다. 가정환경 덕에 해외에서의 부당한 간섭이나 차별도 당차게 대처하지만, 성장기에 고독하고 어려운 삶을 보낸 것이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시기가 마침 윤석열의 계엄 발표 후 헌재에서 변론이 오가던 때였기 때문에, 계엄이 성공했더라면 우리도 비슷한 악화일로의 환경에 처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습니다. 물론 탄핵소추가 기각되면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억압받을 뿐더러 당장 생명을 위협받겠죠.

    정부에서 대놓고 탄압을 하기 시작하면, 길거리에서 히잡같은 복장을 이유로 아는 사이에도 언성을 높이고, 그 전에는 누구에게나 주어졌던 자유로운 행동을 누군가 밀고를 하고, 누명을 씌우고,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구속을 하는 일이 생기죠. 이란정부는 급기야 이라크와 전쟁을 선포하고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데, 윤석열이 북한을 타격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끔찍합니다.

    전쟁을 묘사한 것 중에 눈길을 끄는 대목은 소년을 징병하며 사후세계를 선전하는 것이었어요. 그게 놀라웠다기 보다는, 그런 선전이 가난한 동네에만 뿌려졌다는 사실이 전쟁의 참혹함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비엔나로 향한 마르잔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 보호자의 부재, 또래와의 복잡한 관계 등으로 점철된 어려운 10대를 보냅니다. 혁명 때문에 가족과의 단란한 삶을 잃고 혼란의 시간을 보내게 된 마르잔을 보면서, 이란을 떠나서 다행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평온한 이란에서 현명하고 재치있는 할머니 가까이 오래오래 살았을 마르잔을 상상해봅니다.

  • 유시민,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유시민,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소문을 듣고 책을 검색해 보았어요. 도서관에서 이 책을 찾았을 땐 이미 앞에 예약이 여섯명이나 되어있더라고요. 예약을 걸어두고, 이 책의 존재조차 잊어버리고 있던 사이 굥은 기어이 자신의 운명을 정해버렸습니다. 그의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에도 두어번 다녀온 후에야 책을 읽어볼 수 있게 되었어요.

    워낙 유명한 분이니 저자를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저에게 있어 이 분은 탁월한 스토리텔러입니다. 사실을 잘 버무려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고 그 아야기를 사람들에게 잘 심는 분이죠.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어글리한 굥을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온 코끼리’라고 묘사한 것은 참 절묘했습니다.

    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의 무지함을 지적하는데 아마도 국민의 20% 정도는 동의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잘난 사람들끼리 조금 덜 잘난 사람들보고 모자라다고 쑥덕거리며 비웃을 때면 저는 관람하는 입장에서 곧잘 소외감을 느끼는 편입니다. 다만 굥이 ‘독재자가 될 능력이 없을 뿐, 말과 행동방식은 독재자의 것이다’라고 지적한 부분은 깊이 동감합니다.

    굥에 대한 묘사나 진단보다도 더 관심이 가는 부분은 언론을 비판한 부분이었는데요.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었어요. 저는 평소 국내 언론은 시사IN를 주로 읽는 편이고 요즘은 경향이나 한겨레에도 손이 차마 안 갔는데, 유시민씨의 진단은 이랬습니다.

    『한겨레」를 비롯한 ‘기자들의 언론’은 스스로 균형을 잡는데 치중한다. 편향되었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세상의 균형을 이루는 일에 힘쓰지 않는다. 

    고래와 새우의 싸움에 기계적인 중립이 균형일리 없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회를 위한 가치를 대변하는 언론이 거의 없다시피 느껴지는 상황에 적절한 진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굥으로 돌아가서.. 유시민씨는 책에서 탄핵이 최선이 아니라며 퇴로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글을 쓴 시점에서는 정말 잘 봐줘야 동의를 할 수 있을까말까 한 주장입니다. 코끼리가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간 걸 사람탓이라고 하는데, 그 탓만 할 수 있나요.

    퇴임 대통령이나 탄핵 당한 대통령을 구속하고 기소하고 유죄선고를 내리는 것은 최악의 사태다. 이미 여러 번 했다. 이젠 그만두어야 한다.

    대통령이 범죄자면 탄핵하고 구속하고 기소하고 유죄선고를 내리는 것이 바로 코끼리를 도자기 박물관에 넣은 책임을 지는 태도일 것입니다. 물론 지지자들에게는 굉장한 타격이 있겠습니다만, 민주주의의 기초적인 법칙을 뒤집어가면서 코끼리를 보살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도 스스로 퇴로를 막아버린 바람에 사임 같은 것은 옵션이 아니게 되었지만…

    결말을 알고 보는 여러 시나리오는 김이 샌 측면이 있지만, 굥의 임기를 채우기 어려울 것 같다고 본 이유와 가능한 미래를 점쳐본 통찰이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언론, 검찰, 한국의 정당 등등 사회의 여러 부분을 조망하고 진단한 점에서 한번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 아무튼, 서재

    아무튼, 서재

    팬데믹이 세계를 휩쓸자 회사에서는 사무실 책상과 의자를 집으로 배달해 주었어요. 그 전까지는 적당히 이케아 가구로 꾸며두다가, 그 이후로 큼지막한 책상도 집에서 써보고 서재를 정말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이사를 한 지금도 집무실로 쓰는 공간은 마련해 두었지만, 아직 자리를 잡지 못 한 상태예요. 손님용 방에 책상을 들여놓은 모습에 가깝달까요.

    도서관에 비치된 ‘아무튼’ 시리즈를 둘러보다가 목수가 꿈 꾸는 서재는 무엇일까, 뭔가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아무튼, 서재’를 빌려오게 되었습니다.

    재밌는 것은 저자인 김윤관님도 아직 완벽한 서재를 꿈꾸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공간의 사이즈, 적절한 책장의 모양, 책상의 크기, 의자의 편안함 등등 저보다는 매우 구체적으로 말이죠. 제가 가진 공간과 가구 구성을 떠올리며 읽어봤는데요. 일단 저는 책장은 들이기 전이고, 책상은 말씀하신 대로 사람과 가까운 따뜻한 나무 대신 현대적이고 사무적이죠. 하얗고 거대하거든요. 따스함은 느껴지지 않아도 높이 조절이 되어 제 척추에 매우 관대하고 따수운 존재긴 하지만요.

    서재를 사적인 공간으로 정의한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책장과 따로 두라는 조언을 저도 채택해볼까 합니다. 집무실을 책상을 위주로 하는 창의와 재생의 공간으로 만들고, 책장은 거실에 두어 도서관 기능을 하도록 해두는 것이죠. 저의 대수롭지 않은 장서 수 덕에 도서관 보다는 벽장에 가까울 거예요.

    가구에 대한 고찰 후에는 서재라는 것의 존재를 짚어보는 부분도 나오는데요. ‘여성들의 책 읽기’가 권위에 휘둘리지 않는, 자신과 주변을 이해하는 친근한 독서라는 설명을 하면서도, 아래와 같이 선명하게 묘사한 것은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남성들의 비열한 방해 속에서도 여성들 은 책을 읽고 글을 썼으며, 그 과정을 통해 결국 자신 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인식하게 되었다. 여성들은 한 손에는 책을, 한 손에는 립스틱을 든 채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남자들의 바람에도 불 구하고 여성들은 다시 뒤를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또 조선이 500년 이상 존속할 수 있었던 비결로 선비를 들며, 그들의 수행이 결국은 서재가 있어서 가능했음을 설명한 부분은 신선했습니다. 다만, 실용적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선비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면 다소 이상화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세상이 바뀌는 줄 모르고 옛날의 방식을 고수하고 책만 들고 파다가… 우리 선조들이 오랫동안 고생을 한 것을 너무도 많이 들은 탓입니다.

    후에 제가 ‘홈 오피스’라고 부르는 공간을 재정비할 때, 한 번 떠올려보는 책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심미적으로, 기능적으로 서재는 무엇이 되어야한다고 접근하는 방식이 마음에 오래 남을테지요. 서재를 꿈꾸는 분들은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