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ryubary

  • 손글씨 노트

    전에 저의 기록방식을 간단하게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거기에 더해 요즘은 ‘넘버스’도 사용 빈도가 부쩍 늘었어요. ‘넘버스’는 애플의 공식 앱입니다.

    여러 기록 툴 중에 요즘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손으로 쓰는 노트예요.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머리를 비우기 용도로 자리 잡았어요. 쓸 수록 지난 일과 앞으로 할 일도 자유롭게 정리하게 되더라고요.

    노트를 깔끔하게 또는 형식을 갖추고 쓰지는 않아요. 제 노트를 보면 월별 캘린더가 그려져 있고, 그 다음 페이지엔 갑자기 아무말이 써있다가 또 주간 계획도 나타나고요. 다꾸 좀 하시는 분들이 보면 난잡 그 자체이죠.

    하지만 모든 페이지는 그 당시 제 머리가 정리하고자 했던 것들을 쏟아 놓은 흔적일 뿐입니다. 월별 캘린더를 그린 이유는 한 달을 어떻게 보내는지 보고 싶어서 이고, 아무말이 써있던 건 그 때 생각나는 걸 적으며 의식의 흐름을 좇아본 것이예요. 월요일에는 이번 주가 어떻게 흘러갈 지 한 페이지에 담아보기도 하고요.

    이렇게 막 적다보면, 종이에는 중구난방일지는 모르지만,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특히 의식의 흐름을 좇아 서로 연결되지도 않는 문장들을 앞뒤로 쓰고, 앞에 쓴 말을 또 쓰기도 하고, 주제가 튀기도 하다보면 머릿속에서 그것들이 연결되는 기분이 들어요. 정신이 또렷해지고, 조금이라도 불편한 기분이 있었다면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생각을 비우는 노트는 그런 존재군요. 제가 쓰는 노트 Leuchtturm1917의 모토가 ‘손으로 생각하다’잖아요. 그 말의 뜻도 알 것 같고요.

    노트를 하루이틀 쓴 것이 아니고, 감탄을 어제오늘 한 것이 아니건만 이렇게 또 꺼내오는 이유가 있어요. 며칠새 노트를 꺼낼 틈이 별로 없었고, 그래서 생각은 머릿속에 헝클어진 채 저를 조금 괴롭히고 있었으며, 동시에 하려고 했던 일들을 하염없이 미루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모처럼 노트를 펴고 조용하고 차분히 저와 마주한 시간을 가졌고, 기분이 아주 조금 나아졌거든요.

    제가 이렇게 오픈된 공간에 쓰는 블로깅과는 별개로, 저를 위한 저만의 기록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진지 모릅니다. 노트를 기록하고 나면 조금 다른 사람, 또는 좀 더 나 다운 사람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오늘 밤에도 잠깐이마나 손으로 끄적이는 시간을 가져봐야겠습니다.

  • 스크랩의 발전

    책 하면 종이책이었는데, 이제는 디지털로 더 많이 읽고 있으니 머잖아 종이책은 사라지는 걸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예약 순서를 기다리다 보니 종이책과 전자책을 동시에 빌리게 되었는데요. 종이책은 진도를 손에 잡히는 두께로 확인하는 즐거움을, 전자책은 인상 깊은 내용을 복사해서 모으는 편리함을 줍니다. 특히 책을 읽다가 스크랩을 할 때 디지털로 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하다 보니, 종이책과 전자책의 옵션이 있으면 전자책으로 기우는 것 같아요.

    이전 글에서 종이책을 읽다가 스크랩을 할 때 포스트잇에 적어 옮긴다고 했었는데, 여기에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맘에 드는 내용이 너무 많을 경우 손으로 적어 다시 타이핑하는 방식이 책을 읽는데 흐름을 끊는 문제가 있었어요. 궁리하다가 포스트잇 대신 필름 인덱스 점착지를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장점이라면, 가는 인덱스 점착지를 이용해서 문단의 시작 부분을 체크해 놓았다가 책을 다 읽은 후 밑줄 노트를 모으는 곳에 타이핑을 하는 것이죠. 손글씨의 과정이 하나 사라져서 조금 간편해졌습니다. 또, 인덱스 점착지로 표시한 곳을 다 적고 나면 점착지를 떼어 다시 사용할 수 있어요. 충분히 사용하면서도 쓰레기는 많이 만들지 않는 이 방식이 좋습니다.

    저만의 독서 방식이 굳어져가는 걸 느끼는 즐거움이 쏠쏠합니다. 앞으로 독서와 독서를 돕는 방식이 또 어떻게 발전할지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 짝짝이 어깨

    언젠가 제 배영 자세를 잡아주시던 강사님께서 물어보셨어요. “어깨 안 좋으세요?” 의외의 질문이라 잠깐 멍 했다가 제가 기껏 한 대답은 “글쎄요.” 였어요. 제 몸이 엄청 유연하지는 않아도 적당히는 유연하거든요. 그 순간 ‘글쎄요’의 꽃말은 ‘어깨가 안 좋냐고 굳이 물어 보시다니 안 좋아 보이는 모양이지요?’인 것입니다.

    사실 그러고도 한참 잊고 있다가, 자유수영을 하는 중에 다시 생각이 났어요. 배영을 하다 보니까 왼팔은 자연스럽게 귀를 스쳐 올라가는데 오른팔은 주먹 하나 거리 정도 떨어져 올라가는 거예요. 충격. 팔이 귀를 스치지 않다니. 그리고 양쪽 어깨가 짝짝이였다니…

    수영도 수영이지만 앞으로는 집에서 어깨 스트레칭도 충분히 해서 오른팔의 가동성을 더 높여야 겠어요. 팔이 너무 설치지 않은 덕에 몸에 힘을 풀고 둥둥 뜰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인 일이지요. 요가처럼, 수영을 하면서도 좌우의 차이를 감지할 수 있다니. 제가 몸에 힘을 많이 빼고 조금 여유가 생겼다는 반가운 증거이긴 하네요.

    다만 앞으로는 오른쪽 어깨에 신경을 많이 써야겠습니다. 자유형도 영향을 받았겠지요. 최근 갑자기 실력이 조금 늘어 한창 고무되어 있었거든요. 이런 암초를 만나다니 개선 의지가 불타오릅니다. 한국에 오면서 그만 둔 요가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동안 좌우 차이를 많이 느껴 봐야겠어요!

  • 은이세끼 대파송송 국물라볶이

    네, 먹어 보았습니다. 언젠가 비보에서 컵라볶이 신제품의 출시가 늦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아요. 마침 동네 편의점에 들른 김에 보니 벌써 팔고 있더라고요. 오리지널하고 짜장맛 두 가지를 하나씩 사왔습니다.

    포장을 열면 컵 안에 면, 떡, 스프가 각각 포장되어 들어있어요. 포장 내용물을 컵 안에 모두 비운 후, 안쪽 표시선까지 뜨거운 물을 부은 후 전자렌지에 3분 30초 동안 돌리면 완성이라고 안내되어 있습니다.

    전자렌지에 넣으려는 순간 이런 문구를 봤어요. 뚜껑을 비스듬히 닫으면 넘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던가 덜 넘친다던가… 안내 문구를 봐서 다행이란 생각을 하면서 뚜껑을 비스듬히 덮고 3분 30초를 돌렸습니다. 그 결과.

    넘쳤습니다.

    넘쳤습니다. 네, 이 제품은 넘칩니다. 전자렌지를 청소했습니다.(…)

    먹어보니 양념이 매우 맛있고, 면과 떡은 푹 퍼지지 않고 쫀득거림을 잘 유지하고 있었어요. 요즘 동결건조도 많이 하는데 대파 건더기 하나 보이지 않았던 건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떡도 조금 더 물렀더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아직 짜장맛이 남아있으니, 다음 번에는 면을 빼고 표시선 보다 물을 적게 넣은 후 떡이 익도록 전자렌지에 돌린 후, 면과 물을 더 넣고 돌려서 조금 더 마음에 드는 식감을 구현해 봐야겠어요.

  • 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었는가?

    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었는가?

    ‘시간은 돈’이라고들 하죠. 흔하게 들은 이 말이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어원을 다룬 책인가? 아니면 트리비아의 일종 내지는 심심풀이 땅콩식 가벼운 서적인가 하는 느슨한 마음으로 책을 집었죠. 그런데 목차를 보니 정색하고 정치경제 서적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전에 인상적으로 읽은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쓴 류동민 님의 책이네요.

    저자는 경제 구조, 돈의 의미, 가치에의 탐구 등의 주제를 가지고 워밍업을 하다가 모두가 돈을 쫓고 돈을 기준으로 상품을 바라보는 물신에 대해 다룹니다. 그 물신을 기반으로 불투명한 미래를 산술 가능한 위험으로 치환한다는 것이죠. 과거도 미래도 현재의 가치로 계산이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삶은 납작한 시간의 연속 또는 임의로 앞에서 떼어 뒤에 모아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과 관계가 존재하고, 일의 순서가 있고, 우리가 그 안에서 살아가죠. 시간의 자본화는 우리의 자유로운 삶과 우리의 (자본주의가 내재되지 않은) 욕망을 괴리시킵니다.

    자본은 권력의 얼굴을 하고 인간을 기계의 보조역할로 내몰거나 우리에게 자본화된 시간의 개념을 강요하는데요. 우리는 개개인이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할 권리를 행사하고, 경험을 나누며, 자본가 또는 권력과 타협하고 살 수 있을까요? 시간의 사용 권한을 시간의 소유자 쪽으로 더 끌어올 수 있을까요?

    네덜란드에서는 업무상 이메일을 보내면 종종 이런 자동응답메일을 받습니다. “저는 월요일, 수요일 오전, 목요일 오후에만 일을 합니다. 그 외의 시간엔 답변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시간을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이죠. 다만 업무하는 시간 중에는 개개인의 컨디션이나 집중도 등은 무시한 채 높은 생산성을 요구 받는다는 점에서 시간의 자본화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한국의 경우, 워라밸이란 말은 흔한 단어가 되었지만 사실 일과 가정, 일과 양육을 양립하기 어려운 구조이죠. 노동자들이 시간을 자유롭게 쓸 권리를 충분히 가지지 못 한 셈입니다. 네덜란드처럼 일 하다가도 아이가 하교하는 시간에 데리러 간다던가, 치과 예약을 하고 자리를 비웠다 돌아올 수 있다던가 하는 일이 일상이 되면, 그 경험이 더 많이 공유된다면, 그래서 그런 자유로운 업무방식이 지금처럼 몇몇 회사의 시혜적인 사내복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퍼진다면, 네덜란드처럼 개개인이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권리 또한 커지겠죠.

    저자가 슈퍼매니저의 고임금에 대해 지적한 부분이 재밌습니다. 과연 슈퍼매니저들이 그렇게 많은 임금을 받을 만큼 성과를 내는 것인가라는 부분인데요.

    어쩌면 성과주의의 핵심은 ‘성과에 따라 보상받는다.’라는 원칙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뒤집어진 형태, 즉 ‘보상받는 것은 그만한 성과가 있기 때문임에 틀림없다.’라는 원칙에 있는지도 모른다. 인과 관계의 뒤집어짐, 그 속에서 모호해지는 인과 관계, 그것이 바로 물신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자본이 원하지 않는 능력은 아무 의미 없는 것으로 여겨지죠. 우리는 이렇듯 물신이 깊숙하게 들어온 사회에서 살아갑니다. 이렇게 보니 한동안 많이 들려오던 ‘경제적 자유’라는 말이, 사실은 빼앗긴 시간주권을 찾아오는 비장한 일이라는 점을 상기하게 됩니다.